꼬박꼬박 웰니스 프로그램 참여하고, 책 읽고, 메모도 하고, 풍경도 보고, 먹고 마시면서 보낸 3박4일.
2박3일 예약하면 하루 더 주는 프로모션으로, 총 3박4일간 야무지게 다녀왔다.
핵심 중의 핵심인 먹고 마시는 일은 다음 글에서 상세한 기록을 따로 남기기로 하고, 우선은 파크로쉬의 이런저런 공간에서 즐겼던 내가 좋아하는 일과 떠올랐던 생각들.
산의 기운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따라 달려서 도착한 정선. 서울 집에서 200여km, 화암동굴 같은 정선의 유명한 볼거리와도 30km 넘게 떨어져있는, 말 그대로 주변에 '뭐가 없는' 그런 곳에 파크로쉬 리조트가 있다.
외딴 곳인 대신 안에서 다 할 수 있다! 호캉스의 진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건 '활동'의 측면인 것이고, 정말 중요한 먹고 마시는 부분은 취약하다.... 레스토랑 음식에 매우 실망하고 옴. (음식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계속)
주변에 있는 것은 산, 또 산뿐이다.










호텔에서 나와 식당을 찾아 잠깐 걷는 길에 깨끗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희종이 대뜸 '구기동에서 살자'고 했다. 최근 구기동 빌라를 매입한 친구 얘길 듣고 우리도 가서 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나눴던 시기였다. 북한산 자락이고 도심에서도 떨어져있어 서울 속 숲세권인 곳.
얼마 전엔 구기동 얘기에 갸우뚱 하며 계속 이 동네에 살고 싶다더니. 지금 사는 동네가 우리 부모님 집도 가깝고 자신의 친구들 집도 가까워서 좋다더니, 변덕도 심하다. 나는 그저 신도림이든 구기동이든 어디든 좋으니 더 이사갈 걱정 없이 내 집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뭐 어쨌든, 이런 산 공기를 훅 들이키자면, 앞으로도 쭉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게 당연지사다.
다른 환경에 놓여보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게 이래서 좋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가 잠시나마 선명해진다.

아침 요가 수업 중 가슴을 활짝 열어주는 동작을 할 때는, 좀 유난스럽지만, 감동을 받았다. 한쪽 다리를 다른 쪽 허벅지에 얹어둔 정좌 자세에서 양손을 엉덩이 뒤에 짚고 어깨와 가슴을 펴는 간단한 동작. 허벅지와 어깨, 등이 시원해서만은 아니었다. 가슴을 끌어올려 활짝 열고 멀리 바라보았을 때 눈 앞에 가리왕산이 떡하니 있었다. 마치 내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다 받아들이는 것 같은 자세였다. 깎여나간 채 전신주들이 말뚝처럼 박혀있는 황량한 가리왕산을 보면서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컸는데, 그 순간 만큼은 산의 존재 그 자체의 위대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몸을 움직이는 일
얼마 전부터 집앞의 일대일 PT샵에 등록해 헬스 운동을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내 나름대로 꾸준히 하면서 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다는 느낌이 있었다.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건 내 몸에 대해 좀더 알게 되는 일. 그치만 다이어트랄지, 근력 강화랄지 등등의 운동 효과를 좀더 보고 싶어서 헬스로 종목을 바꿔봤다.
일주일에 한 번 개인 트레이닝을 받고 아무 때나 자유 운동을 하면되는데 이게 맘처럼 쉽지가 않다. 50분에서 1시간 정도인 트레이닝 한 번이 일주일치 운동의 전부가 돼버리는 게 일상.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걸까, 너무 게으른 천성인 걸까,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그쳐도 본다. 그치만 막상 저녁이든 주말이든 남는 시간이 생겨도 몸 상태는 '퇴근 후, 출근 전' 모드.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배돼버린다.



그런 내가 파크로쉬에 있는 나흘 동안은 꾸준히도 운동을 했다. 요가를 하고, 헬스장에 가서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한 뒤에, 뜨끈한 사우나에 몸을 푸는 오전 루틴. 있는 그대로 적는 것만으로도 가뿐하고 개운하다. 평일엔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지각하기 일쑤인데, 정작 휴가 중엔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고 운동을 하는 인간. '아아 나는 일이 아니라 놀 때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다가도 노는 것, 운동하는 것도 일로 하면 하기 싫어지려나? 이런 생각도 뒤따른다. 평소에도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몸을 풀어주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본다.

이건 웰니스 프로그램 중 짝꿍과 서로 마사지를 해주는 '힐링터치'라는 프로그램 전에 찍어둔 것.
희종이 과잉 운동-_-으로 어깨가 좋지 않던 때라 요가도 수영도 못했는데 마사지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같이 들어본 수업.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임산부와 남편이 함께 듣기도 하고 커플들도 많고 해서 유난히 빽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크로쉬 방문객이라면 꼭 낮에 가보길 추천하는 사우나!

밤에 갔을 땐 그저 깜깜한 벽만 있는 줄 알았던 곳. 다음 날 아침에 육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바깥 풍광 바라보며 뜨끈한 물에 들어가있는 기분이 아주 좋다. 수영장에 비해 이용객도 별로 없었다. 이날도 사람이 없어서, 사진 몇 장 찍어두었다.
웰니스클럽 수업 참석하고, 헬스하고, 사우나까지 하는 코스 딱 좋았다. 다만 2층서 1층으로 내려가 사우나 가는 길엔 레스토랑을 지나야해서,... 동선 꼭 그래야만 했냐.



참, 수영장도 한번 이용은 했는데, 풀이 작고 사람은 많아 몸만 담궈보고 거의 바로 나왔다.
야외 자쿠지도 있다. 저녁시간 전에 갔더니 풀방이라 이용할 수는 없었지만. 낮에 잠시 지나가며 보니 자쿠지 쪽도 산뷰가 좋던데 밤보다는 해가 떠있는 시간에 가보면 좋을 듯싶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이곳에 머물면서 운동, 독서, 공부, 낮잠 등등 각자의 시간도 많이 보냈지만, 같이 먹고 보고 즐긴 시간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별했던 건 불멍과 별멍. 1박이었음 먹고 마시느라 제대로 못봤을 것 같고, 2박이었어도 둘째날 눈이 많이 왔어서 아쉽게 지나쳤을 텐데, 3박날 가능했던 액티비티. 정원에서도 별이 많이 보였고, 밤 9시 이후엔 아예 옥상에 조명이 다 꺼지니 올라가볼 만하다. 우리가 올라간 날은 달이 밝아서 별이 쏟아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등등 읊을 수는 있는 정도였다.
참, 옥상이 거의 360도 마운틴뷰고 데크도 깔려 있는데. 아침 일찍 요가매트 챙겨 올라가서 아침 운동을 해도 좋겠다는 ㅋㅋㅋ 생각을 했었다. 실천에 옮겨보진 않았지만,,, 담 기회에 트라이?







근데 은근히 포토스팟 찾기는 어려웠다.
정원이 워낙 예쁘니까 둘이 삼각대 놓고 사진이나 한 장 남기자 했는데, 딱히 건진 것은 없음...

책을 읽는 일
이번 여행의 책은 최미랑의 섭식일기, 정혜윤의 사생활의 천재들.
섭식일기는 작년 혼자 캠핑 갔을 때도 감명 깊게 읽었는데, 읽다 만 채로 일상에 돌아와선 한 장도 더 넘기지를 못했다. 최근 오랜만에 미랑언니를 만나 책에 사인도 받은 김에 다시 후룩 읽어냈다. 내 얘긴가 싶어 접어둔 쪽이 얼마나 많은지, 눈길이 가 한참 넘기지 못하고 쓰다듬던 책장도 얼마나 많았는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 좋은 생각과 글이다. 요즘 뉴스레터 끼니로그도 참 잘 받아보고 있는데, 정보도 유용하고 글맛도 좋다.
놀랐던 것은 지독한 육식파인 희종이 이 책을 선뜻 받아들였다는 점. 이 이야기를 읽고서 바로 비건이 되진 않더라도, 비건을 택하는 사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의 역치가 높아진 것이니까. 나에게도 그런 영향이 있었지만, 뭐랄까 희종이 그런 영향을 받는 것을 보고 더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여행 마지막 날 간 식당 전영진어가에서 '향어백숙'이란 음식을 먹었는데, 희종이 "이런 백숙이면 그 친구도 먹을 수 있는 건가?"라고 먼저 말을 꺼낸 것. 또 반찬이 워낙 맛있기도 했지만 풀떼기만으로 밥 한 공기를 끝내더니 남은 고기반찬을 보며 "안 시켜도 됐겠다"고 말한 것. 희종은 섭식일기를 읽으면서 '과잉'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다.
책은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입구,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파크로쉬 안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2층의 이 라이브러리 공간을 꼽겠다. 룸에 구비된 차를 우려가서, 책도 읽고 메모도 끄적였던 시간. 다양한 의자, 조명 덕에 골라앉는 재미도 있다.








보통 휴가 가면 방에선 저녁 시간만 보내곤 했는데, 이번엔 코로나 탓에 공용공간서 취식도 안되고... 이래저래 룸 안에서도 꽤 시간을 보냈다.
공부할 거 하고 정리할 거 하면서 각자의 티타임.


올림픽의 흔적
파크로쉬는 처음 생겼을 때부터 '산 속의 힐링'이란 테마로 접하고서 기대가 컸던 곳인데, 막상 본 산뷰는 평창올림픽 경기장 만드느라 깎여나간 가리왕산 뷰. 힐링보단 씁쓸함이 컸다. 스키장으로 제대로 활용되고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그저 황량하게 텅 비어버린 산이라니.
물론 생각을 좀 줄이고, 그저 주어진 대로 즐기자면 나쁘지 않은 쉼이었다. 이튿날 쯤 소복히 쌓인 눈은 산의 쓸쓸한 모습을 어느정도 감춰주기도 했다. 방에서도, 요가룸과 헬스장에서도, 독서 공간과 정원에서도 내내 조용히 내리는 눈의 풍광을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에 좀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였다. 정선으로 가는 동안 본 평창올림픽의 흔적들은 대체로 황량했다. 숙소인지 사무실로 쓰였을 법한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2018 평창' 현수막이 걸려있고 건물은 관리되지 않아 폐가처럼 낡아있었다. 그게 정선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특히나 지역과 자연, 평창올림픽을 곳곳에 뽐내면서 상업시설을 운영하는 파크로쉬라면, 더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평창올림픽의 짧았던 영광을 전시하는 것보단, 올림픽 이후를 고민한 흔적이라도 보여준다면 더 고맙고 정감가는 곳이 될 수도 있을텐데.
파크로쉬에서 끄적였던 메모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호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쉼. 가리왕산을 둘러싼 갈등과 환경, 개발, 지역 산업의 문제... 이것들을 덮어두고 그저 그 안에서 쉬고 재충전하라니. 적어도 가리왕산과 평창올림픽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한다면 그걸 덮어놓는 건 그저 상술. 이 리조트에 기대어 영업하는 주변 식당과 여기서 창출된 일자리도 분명 있겠지만, 창밖의 황량한 스키장 슬로프를 보면서 마냥 즐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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